본문 바로가기
예술

서양미술사/미의 왕국.기원전 4세기부터 1세기까지의 그리스

by 윤바다씨 2023. 12. 14.

자유를 향한 미술의 위해단 각성은 대략 기원전 520년경부터 420년경까지의 백 년 사이에 일어났다. 기원전 5세기말까지 미술가들은 아직 장인으로 취급되었으며, 속물들로부터 멸시를 받은 것으로 믿어진다. 그러나 점점 많은 사람들이 다만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기능 때문에서만이 아니라 그 자체의 가치 때문에 그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미술의 여러 '유파'들의 장단점을 논의했다. 즉 각 도시의 거장들을 구별하는 여러 가지 수법과 양식 및 전통을 놓고 의견을 나누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 유파들 간의 비교와 경쟁은 미술가들에게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도록 자극하고, 우리가 찬양하는 그리스 미술의 다양성을 생겨나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건축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양식이 동시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파르테논 시전은 도리아식이며. 그 후 아크로폴리스에 세워진 건축물들에는 이오니아식이 도입되었다. 이오니아식으로 가장 완벽하게 세워진 건축물은 에케크테이온신전이다 이 신전들의 축조원칙은 도리아식과 동일하지만. 전체적인 외관과 특징은 다르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원주들은 도리아식보다 덜 강건해 보인다. 그것들은 가냘픈 기둥처럼 보이며, 기둥머리는 이제 간소한 형태가 아니고 소용돌이로 장식되어 있고, 이 장식은 다시 지붕을 바디고 있는 대들보를 지탱하는 부분이라는 기능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잘 다듬어진 세부를 곁들인 이 건축물들의 전체적 인상은 무한히 우아하고 편안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아하고 편안한 특징은 페이디아스 이후 위 세대로부터 시작도는 이 시기의 조각과 회화에도 나타나나다. 이 시기의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필사적인 전쟁에 말려들고 있었으며, 이 전쟁 이후 아테네 및 그리스 세계는 번영의 종막을 고하게 된다. 짧은 평화 기간이었던 기원전 408년 승리의 여신에게 바치는 한 작은 신전이 아크로폴리스 우에 건조되었으며, 이 신전의 조각과 장식들은 이오니아 양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섬세함과 우아함을 보여준다. 인물상들의 손발은 무참히도 절단되었지만, 나는 그들 조각 중의 하나를 예시함으로써 머리나 손이 없는 손상된 상태일지라도 이 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주고 싶다. 이 작품은 승리의 여신들 중 하나인 한 여신의 상으로서 그녀가 걸어가다가 느슨해진 새들을 조이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있는 모습이다. 갑자기 멈춰 선 자태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묘사되었으며 , 아름다운 몸매를 덮고 있는 얇은 천은 얼마나 부드럽고 풍요한가. 우리는 이 작품들에서 미술가가 자기가 원하는 바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동작이나 단축법의 묘사에서 더 이상 아무런 어려움도 느끼지 않았다. 이러한 용이함과 기교는 이 조각가로 하여금 다소간 자의식을 갖게 했을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를 제작한 미술가는 그의 예술과 작업에 대해 과도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는 그의 작업이 의식의 한 과정을 묘사하는 것으로 알았으며, 할 수 있는 한 그의 작품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 고심했다. 그는 자기가 수천 년 후인 지금도 노소를 불문하고 거장으로서 화제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승리의 신전의 프리즈는 아마도 이 같은 태도 변화의 시초를 보여주는 것 같다. 이 미술가는 그의 엄청난 능력을 자랑했으며, 사실상 그럴 만했다. 이렇게 하여 기원전 4세기가 경과하는 가운데 미술에 대한 접근방식은 점차 변화했다. 페이디아스의 신상은 그리스 전역에 걸쳐 신의 표상으로서 유명했다. 이에 비해 4세기의 거대한 신전 조각들은 그것들이 지닌 미로 인해 더 높은 평가를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시와 연극을 논의하듯이 회화와 조각들을 논의했으며, 미술 작품의 미를 찬양하고 그것들의 형식과 양식을 비판했다.

기원전 4세기의 가장 위대한 미술가인 프락시텔레스는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의 매력과 감미롭고도 암시적인 특징으로 해서 명성을 날렸다. 수많은 시에서 찬양받는 그의 가장 유명한 걸작은 사랑의 여신인 젊은 아프로디테가 목욕하려고 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사라져 버렸다. 19세기 올림피아에서 발견된 한 작품은 그의 손으로 만들어진 원작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를 확인할 도리는 없다. 그것은 청동상을 본뜬 정확한 대리석 모조품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 작품은 헤르메스가 어린 디오니소스를 팔에 안고 디오니소스와 놀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그리스 미술이 이백 년 동안에 얼마나 많은 발전을 했는가를 알게 된다.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에서는 딱딱한 흔적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헤르메스는 기품은 잃지 않은 채 편안한 자세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그러나 만약 프락시텔레스가 이러한 효과를 달성한 방법에 관해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이때까지도 고대 미술의 교훈이 전혀 잊혀 버린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프락시 텔레스 역시 신체의 관절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신경 쓰고 있으며, 그 움직임을 가능한 한 분명하게 우리에게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의 조각이 경직되어 있거나 생동감이 결여되는 일이 없이 이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 그는 근육과 골격이 부드러운 피부 아래서 부풀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할 수 있으며, 무한히 우아하고 아름다운 살아 있는 육체라는 인상을 갖게 해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락시텔레스와 기타의 그리스 미술가들이 이와 같은 미를 지식을 통해 이룩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 조각과 같이 균형 잡히고 아름다운 살아있는 육체는 없다. 사람들은 흔히 그리스 미술가들이 많은 모델들을 관찰하여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특징은 생략함으로써, 즉 실제의 인간의 용모를 조심스럽게 모사하기 시작하여 완전한 육체에 대한 그들의 이념에 일치하지 않는 불규칙성과 특징을 생략함으로써 작품을 미화시켰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리스 미술가들이 자연을 '이상화'했다고 말하고, 그리스 미술작품은 사진사가 작은 흠들을 삭제함으로써 사진을 다듬는 것과 같은 식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듬어진 사진과 이상화된 조각은 일반적으로 개성이나 활력은 결여하고 있다. 버리고 생략하기만 한 작품에는 창백하고 맥 빠진 모델의 유령밖에 안 남는다. 그리스 미술가들의 방식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이 모든 세기들을 통해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미술가들은 고대 미술의 껍데기에 더욱 많은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관심을 기울였다.